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고리 레치칼로프 (문단 편집) == 대공포에 피격 == 7월 26일에 [[두버사리]] 방면으로 지상군 지원을 위해 출격을 나갔던 그는 [[대공포]] 파편이 오른다리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고, 그 상태로 지혈을 해가며 겨우 기지로 돌아와 기절했고, 곧바로 후송 조치되었다. 그가 치료를 마치고 연대로 다시 돌아온 것은 해가 바뀐 [[1942년]] 4월이였다. 그 해 여름에 55연대는 제16근위전투기연대(16 ГвИАП)와 통합되었다. 재편성을 거치며 정예 조종사 위주로 친위연대로 소속이 옮겨졌고, 이들은 낡아빠진 구식 전투기가 아니라 [[Yak-1]] 같은 신형 전투기들을 지급받게 된다. 당시의 소련 공군은 개전 초기에 강대한 [[루프트바페]]의 맹공에 무기력하게 으깨진 전력을 다시 긁어모으고 신형 항공기와 장비 보급에 박차를 가하며 대대적으로 부대 편제에도 메스가 가해졌는데, 제16친위전투기연대 또한 원래는 제216항공사단 예하로 있다가 제9친위항공사단 소속으로 지휘체계가 달라졌다. 1942년이 저물 때까지, 레치칼로프는 4대를 단독 격추시키고 2대를 공동 격추하는 전적을 보이고 있었다. 그 해 연말부터는 동맹국인 미국이 보내준 신형 전투기인 [[P-39 에어라코브라]]가 정예 조종사에게 우선적으로 할당되었는데, 그중에는 레치칼로프 소위도 끼어 있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1943년]] 봄부터 캅카스 북부 전선과 쿠반 강 전선에서 독일 공군의 정예들과 치열한 전투를 거듭하게 된다. 1943년 5월 24일까지 194회 출격에 12번의 승리를 거둔 그에게는 소비에트 연방영웅 칭호가 수여되었다. 당시 엄청난 실전 경험을 쌓아가고 있던 [[전투조종사]]들은 지금과는 조금 달라서, 전장에서 탁월한 공중전 실력과 사격 솜씨를 보이는 에이스는 계급의 고하와 관계없이 동료나 부하들이 자연스레 우러르며 따르게 마련이었다. 이런 풍조는 소련 공군 뿐만이 아니었고, 독일이나 미, 영 조종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무리중에 돋보이는 에이스가 싸우는 것처럼 자신도 싸울 수 있다면 공적은 물론이고, 살아남을 확률도 자연히 올라가게 마련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리 레치칼로프가 그랬다. 그는 1943년 10월에 비행중대장이 되었고 [[1944년]] 5월에는 겨우 24살의 나이에 자신이 근무하던 부대의 부연대장이 되었고, 10월 2일에는 소령으로 진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